김서방유쾌한소식(무료로 불치병 직접 치료하기) :: 물놀이 사고 나와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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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면 사고가 매일 난다. 어떻게 그렇게도 매일 사고가 날 수 있는걸까? 나도 가끔 이곳 저곳을 다니면 사고가 난 현장을 보게 된다. 나 또한 사고를 당하였던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사고를 당한 경우는 모두 어른들의 말을 안 들은 경우이거나 규칙 들을 위반해서 였다. 대부분의 사고는 잠깐의 한 순간의 방심으로 발생한다. 긴 시간 동안 누적되어서 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사고는 찰나의 방심으로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거의 모든 사람은 설마 나에게는 사고가 안 날거야 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정말 중요한 순간에 판단을 잘못해서 사고가 나는 거라 생각한다. 대부분 죽고 사는 갈림길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큰 문제를 만드는 것도 한 순간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순간 방심해서는 안 된다. 특히 어디에 놀러 가는 경우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놀러 가는 경우에는 긴장을 전혀 하지 않을 것이다. 놀러 가는 일 자체가 즐거우니까 긴장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놀러 가는 경우에도 일상 생활하는 듯이 긴장을 늦추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큰 사고를 당했다. 어릴 때 살 던 곳은 충청도 시골이었다. 집 근처에 큰 저수지가 있었다. 여름이면 많은 아이들이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고 논다.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다가 빠져 죽는 아이들이 여러 명이 있었다. 그 시대에 시골에는 수영장이라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수영을 한다고 저수지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여름에는 본능적으로 물 속에 들어가는 듯하다. 나도 그때는 물 속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다. 그날은 동네 형들과 저수지에 수영을 하러 간 것이다. 말이 수영이지 그 때 수영을 배운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확실치는 않지만 수영을 잘한다고 하는 아이들조차 수영을 배워서 수영을 하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던 듯하다. 그냥 물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는 것이다. 더우니까 몸을 식히는 물놀이를 하는 것일 뿐이다. 아이들이라서 물 깊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니까 물에 빠져서 죽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죽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없고 저수지에서 물에 빠져서 죽는 경우가 거의 모두였다. 병이나 차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없었다. 수영을 하지도 못하는 내가 형들과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는게 좋기만 했다. 그런데 형들과 함께 저수지에 가는 거니까 깊은 곳으로 갔었다. 학교에서는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다가 잘못하면 죽을 수 있으니까 저수지에 가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지시를 했지만 학생들은 그 지시를 잘 안 따른다. 선생님은 저수지에 가더라도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말고 얕은 곳에서만 수영을 해야 한다고 지시를 하지만 그것도 잘 안 따른다. 나도 깊은 물에 들어가면 잘못하면 큰 일 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날은 깊은 물에 들어가는 만용을 부렸다. 수영실력도 없는 초등학교 4학년 꼬맹이가 감당도 못할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수영을 한 것이다. 평소에는 깊은 곳이 두렵기만 했는데, 형들과 함께 가서 용기가 난 듯하다. 아니면 나도 형들만큼 잘 할 수 있다는 오기같은 게 올라 왔었는지도 모른다. 형들한테 지지 않겠다는 자존심이었을 듯하다. 지금 그 순간을 생각해보니 나는 물 속에서 해달처럼 저수지 물을 가르고 사방으로 질주했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다리 힘이 빠지고 나는 물에서 허우적 댔다. 도무지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그곳의 깊이는 수십미터는 되어서 그 순간 엄청난 공포를 느꼈고 두려워서 몸은 더 경직이 되었다. 그때까지 사고는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사고를 당했다. 남들만 해당될 듯한 사고를 내가 당하는 중이었다. 나는 물에서 허우적 거리면서 절망을 했다. 나로서는 그 위험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내가 왜 여기를 와서 이런 일을 겪는걸까 하는 후회도 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물속에서 허우적 대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나는 내가 허우적 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어쩌면 텔레비전에서 허우적대는 모습보다 훨씬 절박한 모습이 나였을 것이다. 나는 살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지만 사실 수영을 전혀 모르는 내가 깊은 물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도 내가 그 순간에 살 수 있었던 것은 형들 가운데 특별히 수영을 잘하는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형도 어린 나이였지만 내 뒤로 돌아와서 내 목을 감싸고는 나를 물 밖으로 꺼내 주었다. 

선생님들이 만일 물에 빠졌을 때 다른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물에 빠진 나에게 오는 경우에 아무리 절박해도 그 사람을 붙잡지 말라고 하는 말을 그 순간에도 나는 기억하고 실천을 했다. 물론 나는 그 순간에 그 형의 몸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구조하는 사람도 제대로 구해하는 것이다. 물에 빠진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구조하는 사람의 몸을 잡고 발버둥을 친다고 한다. 나는 그 형 덕분에 살았다. 사고는 한 순간의 방심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지켜야할 규칙같은 것을 무시하는 경우에 생긴다. 나는 운이 좋았지만 큰 사고를 아예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조심하는 건 특별한 건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을 따르는 것, 규칭이 있다면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날이 더워지고 물을 찾아 가는 사람이 많아진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없는 해가 없었다. 설마 내가 사고를 당할까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도 사고를 당한다. 이 생각을 품으면 더 조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고와는 먼 사람이야', '설마'라는 생각을 하면 사고가 나를 덮일 가능성이 많아질듯이 보인다.  

Posted by 김서방이간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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