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병원에서 치료되었다는 사실의 실체
암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받고 완치되었다는 사람을 들어본적이 있나요? 아주 드물게 그런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모르기는 해도 암환자를 치료한 병원은 난리가 날지도 모릅니다. 병원에서 암을 완치시켰다는 건 자랑할 일이니까요. 병원에서 치료행위를 하는 의사들은 병원 치료를 통해서 암이 완치되지 않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평소에 생각하는 완치의 개념과 병원에서 치료를 통해서 완치된다는 개념은 다릅니다. 또한 병원 의사들은 질병의 완치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사람이 질병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완치 상태인데 완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 사실상 의사들은 자신들의 치료서비스를 통해서 환자가 완치되는 걸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병원 치료의 개념은 병소(病所)를 잘라서 안 보이는 상태가 치료된 상태라고 합니다. 병소를 잘라내어서 안 보이고 그 환자가 살아 있기만 하면 완치라니 웃을 일입니다.
과연 암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받고 완치되었다면 그 완치결과가 병원치료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지 우리는 날카롭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병원은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받아들입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사실상 병원의 존재 이유는 아픈 사람들의 질병과 불편한 증상을 없애는 곳이니까 병원이 질병을 치료해야 한다고 믿고 질병치료는 병원만이 담당해야 한다고 받아들입니다. 일종의 종교적 신념과 같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자연치유를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고정관념은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이니까요. 당연히 병원은 모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모든 질환을 치료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병원에서 모든 질환이 완치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제인데 이 두 관념은 현실에서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두가지 관념을 혼동하기때문에 병원의 능력을 오해하고 과대평가하는 듯합니다. 병원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곳이기는 하지만 모든 질병이 완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랜 세월동안 증명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생명을 잃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 일반인은 정확하게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암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수술받고 치료받은 사람들의 생존기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은 병원이 암을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대목에서 병원 수술을 받고 죽지 않은 사람들은 뭐냐고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이 이 글의 중심 내용입니다. 실제로 필자의 아버지는 폐암 수술을 받고 그 즉시 돌아가신 건 아닙니다. 다만 수술을 받은 뒤에 4개월 후에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이런 경우 병원은 아버지의 수술을 실패한 것일까요? 아니면 성공한 것일까요? 그때 당시 수술을 맡은 의사는 자신의 수술행위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는 않더군요. 이런 식입니다. 환자가 수술을 받는 중에 숨지든지 수술 받고 시간이 지난 후에 숨지든지 의사들은 자신의 과실이나 능력부족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일체의 비용을 환불해주지도 않는 이상한 논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은 또 환불을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사실상 환불을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냥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비스교환의 관점으로 보면 환자는 오래 살지도 못했고 서비스 실패인데도 환불해주지 않는 불합리한 시장이 의료시장입니다.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 시장이었다면 고객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암이나 다른 난치병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았다면 정말 그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실력이 뛰어나서 환자가 완치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일정부분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환자의 몸이 좋아졌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연볍칙상 의사의 역할은 대단히 제한적일뿐입니다. 암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완치되었다는 건 사실은 병원의 암치료 요법에 의해서 완치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완치된 환자의 몸 내적인 치유능력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환자의 면역력이 암을 이길 힘이 충분해 컸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암세포를 사멸시킬 수 있는 계기가 몸 안에서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난(질병, 수술, 통증, 등)을 견디는 능력치는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매우 가벼운 정도의 질환으로 너무 심하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심각한 상태의 증상도 거뜬히 견뎌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의 경과와 결과를 천편일률적으로 정의하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은 체질을 들이대기도 합니다.) 처음 암을 수술해서 암을 없앴고 시간이 지나 암이 여러차례 재발하여 암 수술 및 항암요법을 받았는데도 건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대부분 여러차례 수술을 받고 화학요법을 받으면 못 견디고 생명을 잃게 됩니다. 이 상황에 빠지지 않고 반대로 암이 완전히 사라지고는 더 이상 안 생기는 사람을 예로 드는 것입니다. 이 경우 정말로 병원의 치료 덕분에 암이 완치되었겠느냐 하는 것을 필자는 날카롭게 따지고 싶습니다.(이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아주 드물게 있기는 합니다) 그 환자의 치료를 맡은 병원의 의사는 자신의 의학지식과 치료기술로 암환자를 완치시켰다고 당연히 자랑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암세포가 사멸될 수 있는 계기는 수술, 방사선치료, 화학요법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가지 치료방법은 오히려 암세포를 사멸시키는게 아니라 반대로 암세포를 더욱 증가시키는 행위입니다. 암세포 제거 방법이 아니라 암세포 생성촉진 방법입니다. 일본의 어느 의학자가 "의사들은 암을 오해하고 있다"는 책을 썼습니다. 암은 이런 제거요법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암환자가 병원에서 수술 및 항암요법, 방사선으로 암이 완치되었다는 건 그 환자의 몸이 극한 조건을 다 이겨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암은 사라졌지만 다른 후유증은 남겨진 상태이지요. 그건 바로 몸 속 장기가 통째로 사라졌거나 일부가 절제되어서 100퍼센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튼튼한 모습을 유지한다는 건 그 환자의 몸이 내적으로 아주 강건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완치결과와 별개로 환자는 스스로 암을 이겨낼 힘까지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수술 받지 않고 암이 없어지려면 적확한 방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 환자가 아무리 강건하다고 해도 적확한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암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쨌든 병원 치료를 받고 완치되는 그 환자는 사실상 자연치유를 통해 적확한 암치료 방법을 적용했다면 사실상 몸 속 장기를 절단하지 않은 상태로 훨씬 더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었을 거라는 점을 필자는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암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에 대한 생각까지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병원치료와 자기치료의 가치를 생각하는 기준을 갖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환자는 암을 아무 원인 없이 어느날 갑자기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부터 생기는 운명처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암에 걸리는 자신의 삶을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생각하지 않기때문에 의사를 찾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 개인의 삶의 모습을 알겠습니까? 의사는 환자의 몸을 들여다 보고 암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줄 수 있을지언정 환자를 알 수 없습니다. 환자에게 삶에 대해서 들어서 알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는 다른 시각으로 암을 보아야 하는데 의사도 환자와 똑같은 태도로 암을 대합니다. 일반적으로 암의 원인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지만 의사들이 그 정보들을 기반으로 암을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환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암은 재수 없어서 걸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 모습을 많이 봅니다. 하여튼 다음에 계속 연이어 들어오는 환자들때문에 환자의 삶을 아는 것을 불가능하지요.
환자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는 환자 자신에게 원인이 있습니다. 원인이 없어 보이는 암을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자연이 아무 이유도 없이 만들었을까요? 내 몸이 자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이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내 몸은 자연이지만 내 생각은 자연과 괴리되어 있지요. 내 생각대로 평생동안 내 몸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태도가 내 몸이라는 자연을 거슬러서 암을 만든 것입니다. 환자들이 원인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의사들도 암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암이라는 결과만 보니까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이 사소한 차이로 수많은 암환자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의사들은 암의 원인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원인을 알지 못하는 채 암만 몸에서 지우려고 합니다. 환자처럼 이유 없이 암이 생겼다고 치부해 버리는 치료, 암만 제거하는 치료로 원인은 그대로 남겨진 채 실제로는 치료되지 않은 채 환자의 몸은 봉인 됩니다. 그냥 바로 그 부위에 어쩌다가 암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의사만이라도 하루 빨리 벗어야 합니다. 세상의 법칙은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는 것인데 원인이 없이 결과가 만들어졌다니까 모순된 그들입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 변화들은 내가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좋습니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부인해봐야 다른 것들에서 답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내 몸에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들 그리고 그 변화들이 누적되어 계속 내 몸의 세포에 영향을 준 10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주체는 오로지 나였습니다. 삶은 결국 선택이고 내가 매일 결정하고 선택한 하루들이 모여서 긴 시간의 축적된 결과 어느날 갑자기 중병이라는 진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를 기준으로 하면 상태의 변화를 눈치 챌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변화이든 나쁜 변화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긴 기간의 시간을 생각한다고 해서 쉽게 알아차리는 것도 아니더군요. 저는 매일 몸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미세한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성향을 갖고 있지만 이런 저조차도 짧은 기간의 변화나 긴 기간에 걸친 변화를 쉽게 인식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아픔과 치료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현저하게 부족한 일반인들이 평상시의 자신의 몸 변화를 눈치채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자신의 몸에 저지른 실수들을 실체도 없는 세상탓, 운명탓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질환은 자기 자신에게 원인이 있고 그 질환을 해결하는 정답도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법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행동때문에 10년 이후의 내 몸은 그에 맞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좋은 선택을 했다면 10년 후 나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한 행동이 몸에 이로운 행동이 아니었다면 그건 어떤식으로든 부메랑이 되어 나를 해치는데 이바지 하게 됩니다. 자신이 만든 결과를 남이 해결한다는 건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헝클어뜨린 내 몸 속의 실타래를 나만 풀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명의에게 내 몸을 맡겨도 내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절대로 풀 수 없습니다. 오래 전에는 저는 암치료의 비법을 알고 싶었습니다. 많은 공부를 하고 암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상당부분 알아냈습니다. 암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는 지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생각과 태도와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 내용들을 기반으로 병원에서 암이 치료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사실 병원에서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받고나서 암이 완치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세밀한 연구를 실행한 통계를 보면 병원 치료를 통한 암완치는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치료를 통해서 암이 완치되었다고 보여지는 환자들은 사실은 환자 자신의 회복력에 의한 치유였을 뿐입니다. 심지어 병원 치료는 환자의 회복력과 치유능력을 계속 갉아먹는데도 불구하고 병원 치료를 받고 암이 완치되었다면 그건 그 환자 몸의 치유능력이 월등히 좋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병원의 치료방법은 환자의 몸의 치유되는 방향을 항상 방해하는 작용을 하는게 맞습니다. 약은 치료약이 아니고 수술로 장기를 제거하는 방법은 실질적으로 몸을 훼손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장기가 사라지는데 몸이 치료되는 걸 기대하는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우리 몸에 들어 있는 장기는 모두가 매일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기 기관이 없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이번 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병원치료로는 몸이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설령 병원에서 암이 치료가 되었다고 해도 그 이면의 내용은 병원 치료로 완치 된 것이 아니라 환자 자신의 회복력과 치유력으로 치료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병원은 단지 환자들에게 나를 돌볼 전문가가 있다라는 안위감만 줄 수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