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봐야 알 수 있는 사람과 안 겪고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일까? 문득 오늘 하루 내 머리에 스쳤던 한 문장이다. 이 단어는 한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10 년 이상 혹은 그 이상 인생 전체의 상황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만나는 사람마다 올바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사람을 못 만났는데 올바른 사람을 못 만났다는 것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물론 내 주변의 지인들 중에 훌륭한 사람이 못된 사람보다 훨씬 많다. 수적으로는 세배 이상 혹은 그 이상 열 배가 넘는다고 말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니까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올바른 사람을 못 만났다고 기억을 하느 걸까? 그 이유는 못된 사람을 만나서 내 인생이 여러모로 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난 기억보다는 나쁜 사람을 만난 기억이 나의 생각에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쁜 사람을 만나고 겪으면서 나는 이전에 사람을 보던 눈과 다른 시각으로 사람을 보기 시작하게 된다. 내가 최초로 친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난 뒤에도 여러차례 여러 사람드레게 속은 일이 있었다. 결국 사람은 경험을 하지 않은 분야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법임을 나는 삶을 살아 가면서 깨닫게 되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언제인가 어느 책에서 미쓰비시 회장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어느 기자가 그 회장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나는 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눈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보는 눈'은 우리들 인생을 살면서 정말 중요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의 가치를 보는 눈을 갖는다는 건 말은 쉽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안다. 어쩌면 평생동안 물건의 정확한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주식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아는 눈을 가졌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개인 투자자들이 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안다고 하면 주식투자에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만큼 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아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정확하게 아는 실력은 어떨까? 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눈과 사람을 정확하게 보는 눈은 다를까? 그 점은 어떻다고 명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어렴풋이 같은 능력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정확히 알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최소한 당신은 커다란 어려움에 빠질 위험은 많이 줄어들 수 있다. 우리네 인생은 실패와 성공이 씨줄과 날줄이 엮여서 천조각이 만들어지듯 얽히고 섥혀서 수 많은 일들을 경험한다. 그 중에 절대로 당하고 싶지 않은 어려움을 다른 사람에 의해서 당하는 일이 수 없이 많이 발생한다. 결국 내가 만나는 그 사람에 의해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만나는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당신의 친구나 형님, 누님, 언니, 동생을 전적으로 믿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한다면 당신의 많은 것을 그 사람에게 의탁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약하고 아는 것이 많지 않고, 당신이 만나는 그 사람은 강하고 아는 것이 많아서 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다고 해도 결코 그 사람에게 당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그것은 당신의 생명과 같은 것, 당신을 당신이게 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그것이 돈일 수 있고 당신의 재산임을 증명하는 문서일 수도 있다. 그것이 통장일지도 모르고 당신의 이름, 즉 명의일 수도 있다. 당신이 그 사람을 10 년을 넘게 알고 있었고 그 기간 동안에 그 사람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고 느껴졌다고 해도 당신은 결코 그 사람을 100퍼센트까지 믿어서는 안된다. 설령 90퍼센트까지 그 사람을 믿었고 그 사람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해도 당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그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는 나는 워낙에 다른 사람을 많이 믿었고, 그로 인해서 나는 나의 많은 것을 내가 믿는 그 사람들에게 맡겼었다. 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없다고 믿었었다. 경험이 적은 젊은 시절에는 사름을 아주 쉽게 믿었고 의심하는 법을 몰랐다. 물론 아버지는 필자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배우지 못했다. 결국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으로는 나의 지식 나의 삶이 안 되는 것인 가보다. 내가 아버지의 그 말씀을 진정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나는 남을 쉽게 믿지 않았을 것이고, 그로 인하여 어려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항상 사람을 의심ㅎ여야 한다는 것일까? 항상 사람을 의심하기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맞는 말이다. 그래서 미쓰비시의 회장이 말한 물건의 가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보는 눈, 사람의 진실성이나 실력을 정확하게 본는 눈을 갖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부분은 아직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명확하게 제시할 수는 없다. 어쩌면 문제의 속성상 해결책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없는 사항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속성을 정확하게 알려면 관상을 볼줄 알고 사람의 미래를 보는 눈이 필요한 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만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아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다만 사람의 잠재 의식에서 그 사람에 대해서 경고할 수는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위험 인물인 경우에는 나의 잠재 의식에서 그 사람을 조심하라는 어떤 느낌을 보내는 것을 나는 여러번 느꼈다. 이 사람은 아무리 좋아보여도 나의 잠재의식에서 거부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겉 사람과 속 사람은 사람을 느끼는 방법이 다르다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이런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느낌이 있었다. 다만 나의 경우는 이 중요한 잠재의식의 그 위험신호를 무시하면서 위험에 빠진 경우다. 어느 사람을 만났는데 단순히 그 사람이 좋게 느껴지는 것과, 나의 잠재의식 속에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나의 생각도 의식하지 못하는 잠재의식 속에서 그 사람을 느끼는 어떤 의식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나의 눈을 믿지 말고 나의 잠재의식을 더 믿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확하게 모른다면 나의 눈을 의지하지 말고 잠재의식을 더 의지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의 다음 글에서는 내가 왜 잠재의식을 중요시하는지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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